카사밀라에 대한 풍자
라 페드레라는 당시 풍자 잡지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카사밀라는 가우디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이자 카탈루냐 모더니즘 과 보편적 건축의 유명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독특함이 보편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카사밀라는 이윽고 수많은 풍자와 캐리커처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우디 시대의 풍자
풍자란 도덕적 목적과 오락이나 단순한 조롱을 위해 어떠한 대상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문학적 형식으로, 종종 그림이나 만화가 함께 짝을 이룹니다.
1906년부터 1912년 사이 라페드레라가 건설된 당시에 풍자는 신문의 일반적인 특징이었습니다. 풍자 작품은 언론과 어린이 잡지에 등장했으며, 심지어 풍자 전문 출판물이 당대에 큰 인기를 끌 정도였습니다.
라페드레라와 같은 혁신적인 건물의 건설은 비평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09년부터 1925년 사이 다양한 풍자적 출판물에 건물의 독특한 구조가 등장하며 대중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풍자적인 잡지에 등장한 밀라
1909년부터 1925년 사이, 몇몇 바르셀로나의 풍자 잡지에서 라페드레라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비평을 남긴 바 있습니다.
가장 초기의 비평은 1909년 1월 ¡Cut-cut! 잡지에 실린 만화로, 라페드레라를 어머니와 아들이 지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엄마, 여기에도 지진이 났었어요?” 이러한 언급은 건축 당시 건물의 파사드를 암시한 것으로, 마치 한 달 전 시칠리아에서 발생했던 지진처럼 마구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고 풍자한 것입니다.
카사밀라에 대한 마지막 풍자적 언급은 1925년 5월 어린이용 잡지 En Patufet에 등장하였습니다. 만화는 이 건물의 발코니와 축제 기간에 장식용 천을 거는 것의 어려움을 비웃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림은 달팽이부터 커피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섞어 만든 발코니 중 하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출판물은 해당 건물이 오늘날에도 유명한 별명인 라페드레라로 불린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처음에는 경멸스럽게 사용되던 이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카사밀라의 정체성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